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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전시를 보고 온 며칠 뒤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샤갈처럼 열심히 연애하고 사랑하고 이것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길고 긴 그의 생애만큼이나 지루하리만치 종이 위에 그리고 석판화 동판화 스테인드 글라스 우화 신화 성경 이것 저것 손대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색채의 마술사답게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고 그렸는데, 그래서 뭐지?
그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참으로 장수한 작가이다. 활동한 기간을 보면 이건 뭐 피카소에 견줄 정도다. 진심 부럽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는 참 격동의 세월을 잘도 지낸 것 같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미소냉전, 베트남전쟁, 중동전쟁, 남미분쟁, 등등. 그 외에도 아시아 아프리카 식민지들의 독립 운동, 볼셰비키, 68혁명, 문화혁명, 알제리 전쟁, 스페인 내전, 달착륙, 우드스탁, 비틀즈, 엘비스, 마틴 루터 킹, 고다르, 구로사와 아키라, 등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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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뒤져보면 또 알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 내 소심한 심미안으로는 적어도 샤갈은 이런 것들에 크나큰 관심은 없었던 것 같다. 여기서 이런 것들이란 축구나 록음악도 들어가지만, 전쟁이나 억압, 또는 의식의 변화나 개혁, 혹은 이에 반하는 여러 운동이나 현상들도 포함된다. 적어도 그의 그림만을 놓고 보면, 분명 그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그의 그림 속에서 당시의 사회상이나 그만의 세대를 느낄 수 있는 훌륭한 눈이나 마음이 부족한 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작 사회상이 담긴 작품들을 아직 접하지 못했거나, 전쟁에 하도 채이고 채여 사회의 흐름 따위 완전히 외면해버렸거나, 이도 아니면 자신의 작품은 사회와는 무관한 별개의 창작 활동이라는 순진한 고집을 끝끝내 유지한 것인가. 어쩌면 마치 (조금 극단적이지만) 서정주가 군부에 알랑거리며 애새끼들이 죽던 말던 아름다운 시를 써 내려간 것과 유사한 케이스 아닐까? (그는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정부의 미술사업에도 잠시 몸담았었다고 하지만, 타의에 의한 억지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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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작가는 기본적으로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그것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기 위해 고뇌하며 몸부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 작가의 존재의 이유이며 본분이기에.. 결국 작가도 한 사람의 개인이고, 그 작품도 그 출발은 자기 만족에서부터니까..
자신의 작품활동을 연명하기 위한 현실적 타협, 현실적 외면으로 보이는, 아니 진정 그러했든간에 그건 일단 이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비관한 나머지, 타협하고 공존하느니 차라리 숨어버리는 게 낫다고 붓을 꺾어 버리는 작가보다는 오히려 친일, 혹은 현실 외면으로 보이는 샤갈과 같은, 그래도 나름의 주체할 수 없는 예술적 욕망을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표현해 내려고 하는 작가의 예술혼이 더 절실히 뜨겁다..
그래서 그 근원적인 차원에서 봤을때, 현실에 맞서며 현실을 대변하는 지성으로서의 목소리를 내는 작가는 또 다른 성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실과 동떨어져 때론 현실과 타협했다고 하여 그 작가의 순수한 작가적 열망마저 무시해버리는 것은 왠지 슬프다..
어찌보면 그네들은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의 작가적 역마살을 끌고 나갈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그건 그네들에게 숨쉬기 위한 생존 그 자체의, 눈물겨운 개인의 문제는 아니었을까..
너무 비약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가까이는... 식민지 시대에 단지 친일이라는 이름에 묶여, 순수한 작가로서의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한 우리의 문학인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