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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序文)에 대해 |
예전에 미셸 푸코를 한동안 좋아하다가 그의 정치사회적 행보에 다소 실망하여 관심을 끊은 적이 있었다. 심지어 당시 읽고 있던 그의 명저, ‘성의 역사’를 내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오만방자하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우연히 접한 르몽드 어느 칼럼에서 그의 인간적인 부분에 조금 이끌리는 바람에 (물론 푸코에 대한 비판이었지만) 그의 저서들을 다시 읽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집구석 내 코딱지만한 서고를 뒤져보았지만, 역시 책들은 어디론가 사라지는 속성이 있는지, ‘감시와 처벌’ 외에 읽다 내버린 ‘성의 역사 2권’ 말고는 다른 책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 숨은 건지, 누가 빌려간 건지 알 수 없으나, 책 사는 돈이 어찌 아까우랴 라는 다소 된장 같은 심정에서 서점으로 향해 그의 초기 저서, ‘광기의 역사’를 다시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서점의 책꽂이에는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발간한 두 개의 ‘광기의 역사’가 놓여있었다. 번역자도 다르고, 가격도 다르고, 심지어 서문도 달랐다. 이를 어쩐다.
한 권은 내가 오래 전에 구입했던 그 책의 재 판본이었고, 나머지는 양장으로 새롭게 출간된 새 번역본이었다. 나는 적당히 두 책을 비교하기로 하고 작가 서문, 즉 푸코가 직접 쓴 서문을 읽어가는데 당황스럽게도 두 책의 서문이 아예 달랐다. 오래 전에 구입했던 책의 서문은 예전 그대로 푸코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쓸 때의 그 서문이었다. 그리고 양장본의 새 번역본에는 재발매에 맞춰 쓴 새로운 서문, 말하자면 과거의 서문을 지우고 쓴 새 서문이었다. 게다가 그 서문은 시간상 푸코가 이미 왕성한 사회활동(?)을 시작한 이후에 쓰여진 것이었다. 쉽게 말해, 한껏 콧대가 높아진 이후라고나 할까? (푸코의 성격이 또한 그렇다.) 물론 이 또한 나름의 가치가 있겠으나, 두어 페이지를 읽다가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첫 번째 책, 최초 서문을 간직한 구 버전을 구입했다. 그의 오래 전 서문은 젊은 시절의 풋풋함은 아니더라도 패기라던가 날카로움이 더 묻어나는 의기에 찬 그것이었다. 더불어 서문 자체로서도 굉장히 훌륭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구입할 때, 혹은 책을 볼 때 서문을 읽는 지 궁금하다. 반드시 읽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나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서문만으로 같은 책을 저울질할 정도라면. (여기서 서문이란 작가가 직접 쓴 머리글도 포함되지만, 출판사나 평론가들의 손을 빌린 서평도 포함된다.) 대개 서문에는 이 책의 요약이 들어간다. 그리고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혹은 이 책의 의의 같은 것들이 간단 명료하게 담긴다. 이 서문을 통해 독자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끔 서문을 열어보면 간혹 본문보다 훌륭한 경우가 있다. (이건 어쩌면 비극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앞서 언급한 푸코의 ‘광기의 역사’ 역시 서문이 참으로 훌륭하다. 물론 개인적 취향이라 왜 훌륭한 지에 대해 따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언젠가 어느 지인의 권유로 읽은 천명관 작가의 ‘고래’ 역시 그랬다. 권유해준 지인 역시 이 작품의 서문을 읽어보라고 했을 정도였는데 신경숙 작가의 서평이었다. 비록 간결한 글에 불과했지만, 읽고 나서 ‘아,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신경숙씨의 글은 좋았다. 또 기억을 더듬어 보면, 서머셋 모옴의 ‘인간의 굴레’ 서문도 기억에 남는다. 그 간단 명료하고 겸손하면서도 할말 다하는 소위 쿨한 서문은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상문학상 작품집의 엣 서문들, ‘작품 선정의 이유’ 같은 것도 참 좋았다. 요즘은 작품선정의 변이 갈수록 짧아지는 것 같지만, 오래 전 이어령씨의 서평들은 내게 마치 이 책을 잘 산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끔 했으니까.
책을 손에 든 순간, 서문부터 읽을 필요는 없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굳이 서문을 찾아 읽을 필요는 없다. 다만, 가끔 보석처럼 빛나는 서문들을 발견할 때면, 왠지 누군가 이 서문을 그냥 지나치고만 말 것 같아 괜히 마음 졸이며 아쉬울 때가 있다. 斜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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